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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4. ‘병신’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당신에게

국가인권위원회의 2019년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2%가 혐오표현을 접한 경험이 있으며 그 대상으로는 장애인이 58.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혐오표현의 유형별 인식과 관련해서는 “불쌍하다”는 식의 편견 조장이 50.2%, 멸시·모욕이 52.1%, 차별·폭력 선동이 50.4% 등으로 조사되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편견 조장과 멸시·모욕, 차별·폭력 선동은 물론 심각한 문제고, 많은 사람이 그 심각성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는 듯하다. 그러나 명백한 혐오표현임에도 불구하고 혐오표현이라 부르지 못하는 혐오표현도 있다. 특히 ‘병신’과 같이, 일상적인 욕설로 흔히 사용되는 장애인 혐오표현이 그러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또한 이 글을 쓰는 필자도 결코 자유롭지 못할 문제다.

웹진 “I AM NOT___”의 네 번째 인터뷰는 교내 학부생으로 재학 중이신 한 학우분과 함께,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 전반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의 양상을 주제로 하여 진행되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이 주제이니만큼 장애인 당사자를 인터뷰이로 구하고자 하였으나, 섭외에 어려움이 있어 부득이하게 장애인권에 관심이 있고 관련 활동 경험이 있는 인터뷰이를 선정하였다.

 

Q. 인터뷰 시작에 앞서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서울대학교에 재학중인 XXX입니다. OOO에서 수화와 점자를 배워보고 교육하는 등 관련 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이번 인터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Q. 인터뷰이께서는 평소 스누라이프나 에브리타임 같은 서울대학교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하시나요? 이용하신다면 보통 어떤 기능을 사용하시는지, 어떤 목적을 위해 접속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저학년 때는 학교 관련 정보나 수업 정보를 얻으려고 자주 쓰던 편이었어요. 그런데 스누라이프나 에브리타임이나 둘 다 자유게시판에서는 워낙 의견 대립이 심하고, 표현이 과격하고 날카롭다 보니까 시간이 갈수록 자유게시판은 거의 보지 않고 정보 게시판 위주로, 구인 구직 게시판이라든가 수업 게시판, 홍보 게시판 이런 곳을 위주로 이용합니다.

Q.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더 자주 사용하게 되었는지, 그렇다면 그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A. 아무래도 코로나19 이후에는 더 많이 이용하게 된 것 같은데요. 코로나19 방역 대책 관련 정보는 커뮤니티에 거의 실시간으로 올라오다 보니까 그런 정보를 접하려고 자주 하게 된 것도 있고요. 외출할 일이 없다 보니까 폰을 보는 시간이 늘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사용 시간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Q. 스누라이프나 에브리타임의 경우 알람으로 뜨는 인기 게시물을 보기도 하시나요?

A. 아침에 일어나면 자동으로 알람이 오게 설정되어 있고, 그 내용이 재밌는 내용이면 눌러보기는 하는데 싸우는 내용이나 누군가에 대한 혐오성이 짙은 글로 올라오는 경우에는 눌러보지 않고 있어요. 스누라이프는 인기 게시물이 누군가와 싸우거나 누군가에 대한 적대적 의견을 표하는 글이 많아서 저는 사실 스누라이프 메인 화면도 잘 들어가지 않아요. 메인 화면에 들어가면 바로 인기 게시글이 뜨게 되어있는데, 그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할 때가 있어서 그냥 바로 필요한 게시판으로 들어가는 편이에요.

Q. 최근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서 온라인에서의 혐오표현 사용이 늘어났다고 이야기되고 있는데, 혹시 교내뿐만 아니라 다른 포털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혐오표현을 목격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A. 정말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이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이전에도 그런 혐오표현들이 쓰이기는 했지만, 집단 전체를 매도해서 비하하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하는 댓글들도 많았어요. 요즘에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이슈에서는 오히려 대다수가 그런 혐오표현에 동조하고, 그걸 지적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중국인이냐”라고 공격하더라고요.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집단 전체를 매도하거나 비하하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하는 댓글도 몇 번 봤던 것 같은데, 코로나19 이후에는 거의 못 봤던 것 같습니다.

Q.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특히나 더 이러한 혐오표현들이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의견을 나누다 보면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하는 데 있어서 비언어적, 반언어적 표현 같은 건 고려하지 않고 텍스트만 보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맥락을 보지 않고 자그마한 거에 꼬투리를 잡게 되는데, 그런 걸 공격하는 데 있어서 혐오표현이 효과적인 공격수단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Q.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혹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적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혐오표현을 목격하신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맥락과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A. 제가 이용하는 커뮤니티는 그렇게 크게 공격적인 커뮤니티는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데도, 자기가 동의하지 못하는 의견이 있는 경우에 지적 장애를 빗댄 욕설을 사용하거나 “왜 이해를 못하냐, 너 장애인이냐” 이런 식으로 공격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어떤 대상을 두고 예쁘다, 안 예쁘다로 의견이 나뉠 때도 서로에 대해서 시각적으로 장애가 있냐는 식의 표현도 있고요. 혹은 이게 누구의 목소리인지를 가지고 싸울 때는 청각 장애에 빗댄 욕설을 사용하면서 이걸 어떻게 들어야 “그 사람 목소리냐, 니 귀가 잘못된 거다” 이런 식으로 혐오표현을 사용하는 걸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Q. 그러한 혐오표현의 연장선에서 신체적, 심리적 피해가 발생했거나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목격하신 적이 있나요?

A. 제 지인은 아니고, 어딘가에서 본 글이었는데 이런 내용이었어요. 초등학교 교실이나 중학교 교실에서 장애 학생을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게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장애 학생의 짝이 되는 학생이 그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하는 게시글이었는데, 그 글의 댓글이 장애인에 대한 혐오표현으로 도배가 됐어요. 그런데 같은 커뮤니티 이용자분들 중에서도 당연히 장애를 가진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렇게 장애인을 비하하는 댓글을 보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장애 학생과 같은 교실을 썼던 경험이 있지만, 댓글에서 말했던 극단적인 사례를 경험하지는 못했거든요. 분명히 일부 사례이고, 그 사람이 장애 학생이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그 사람이 저지른 실수와 잘못이 오로지 장애인이기 때문이라고 논리의 비약이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Q. 이러한 혐오표현들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에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을 나누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A. 혐오표현을 마주하는 이들이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는 게 가장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마주할 때 그 사람의 첫 이미지는 기존에 보고 들었던 혐오표현의 영향을 받으니까요. 그리고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는 장애인들도 그런 혐오표현에 노출될수록 위축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Q. 다른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과 다르게 이러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만이 가지는 특수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예를 들어 중국인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은, 중국인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내재하고 있고 그런 혐오를 스스로 인지한 상태에서 혐오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런데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은 습관적으로 툭툭 내뱉는 경우가 많아서 더 지적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지적을 하더라도 “나는 장애인을 혐오하는 게 아니다, 이건 일상적인 표현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책임을 회피할 소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진짜 장애인을 차별하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표현을 애초에 지양했거나 그런 표현을 사용했더라도 지적이 들어왔을 때 수긍하고 바꿔나갈 것 같습니다.

Q.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을 일상에서 마주했을 때, 보통 어떻게 대처하시는 편인가요? 만약 소극적인 대처를 했을 경우, 소극적인 대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말씀해주세요.

A. 사실 그런 장애인 대상 혐오표현을 지적하면 화내는 경우가 있어요. “표현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 이런 식이어서 지적하기 어려운 분위기이기는 한데, 그래도 지인들이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지적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예민한 사람, 분위기나 흐름을 깨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친한 친구들이나 편한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지적하기 쉬운데, 저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위가 높은 사람이 그런 표현을 썼을 때는 지적하기 쉽지 않죠.

Q. 서울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를 포함하여, 온라인 커뮤니티 상의 이러한 혐오표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해결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확실히 커뮤니티 차원에서 커뮤니티 활동에 제재를 주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안인 것 같기는 해요. 제가 하는 커뮤니티에서도 원래는 혐오표현을 비롯한 욕설이 크게 금지되지 않았었는데, 그러다가 그 커뮤니티에서도 혐오표현 및 욕설 금지라는 규정을 만들고, 그걸 지키지 않으면 활동 제재를 가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그 규정이 정착되다 보니까 혐오표현이나 욕설의 수위가 확실히 낮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커뮤니티 차원에서의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과 장애인 차별적인 언어를 지적하고 바꿔나가는 일이 궁극적으로 장애인 차별적인 사회 분위기를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도 함께 말씀해주세요.

A. 물론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사회에 나가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보고 대화해보고 하면서 생각보다 말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제가 만나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들었다면 가급적 그 사람에 대해 좋게 해석하고 싶어지는 반면, 미리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쁜 평가를 들으면 그 평가에 부합하도록 일부러 마음에 안 드는 점이나 잘못된 점을 찾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혐오표현도 마찬가지로, 혐오표현에 익숙해지다 보면 혐오표현을 사용하는 걸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는 이들에게서 그러한 특성을 찾아내려고 할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바꿔나가는 데서부터 그런 분위기가 많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혐오표현을 근절하는 일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A. 언어라는 게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사회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특정 혐오표현이 만연하게 사용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그런 혐오표현을 쓰지 않게 하는 것도 어렵고 분위기를 개선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어떤 혐오표현이 일반화되기 이전에 그것을 근절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서울대학교 내에서 혐오표현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성을 도모하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A. 대학은 열린 공간이고, 이 공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생활을 해나가기 때문에 그 시기에 쌓는 경험에서만큼은 혐오를 배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학에 와서 보니까 서울대학교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구성원들의 나이, 지역, 국적이 다양하다 보니까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다양성과 개성이 혐오표현의 이유가 될 수도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되기에, 혐오표현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성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각자의 자리에서 혐오표현에 맞서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연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A. 예민함이라는 게 사회를 바꾸는 열쇠 같은 거라 생각해요. 그 예민함이 남을 공격하면 안 되겠지만, 누군가를 보호하는 수단으로써 예민함을 사용하는 건 얼마든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예민함이 내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인지 구분은 해야겠지만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그 예민함을 사용한다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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