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의 심각성은 많은 이가 공감할 것이지만, 장애를 희화화하거나 장애인을 동정과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혐오표현은 쉽게 지적하기 어렵습니다. 별 생각이 없었다거나, 좋은 뜻에서 한 말이라며 사소한 문제로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기에, 아마도 당신이 몰랐을 혐오표현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애인에 대한 혐오표현이란 장애인에 대한 혐오감을 내재한 표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모든 표현을 의미합니다. 장애인을 동정이나 보호의 대상으로 보거나, 장애인은 선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담겨있거나, 장애를 결손으로 보는 모든 표현 또한 이에 해당합니다.
1. ‘결정장애’, ‘선택장애’
단순히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상태, 선택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장애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은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내포하고 있으며, 장애를 희화화합니다. ‘결정 곤란’이나 ‘결정하기 어렵다’는 표현으로도 충분히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XX 탈출은 지능순’이라거나, ‘발작버튼’, ‘지랄발광’과 같은 표현 또한 특정 장애나 그 증상을 희화화하는 혐오표현에 해당합니다.
2. ‘정상인’
‘비장애인’이 옳은 표현입니다. ‘정상인’은 ‘상태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표현은 아니지만, 장애가 비정상적이고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합니다.
3. ‘장애우’
‘장애인’이 옳은 표현입니다. 벗 우(友)자를 사용한 ‘장애우’라는 단어는 1인칭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친근한 사이일 것을 전제합니다. ‘장애우’라는 표현은 은연중에 장애인이 동정과 보호의 대상이라는 인식을 갖게 합니다.
4. ‘장애를 극복하다’
‘장애학의 도전’의 저자 김도현은 이렇게 말합니다. ‘손상은 손상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한 관계란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장애는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며, 손상을 장애로 만드는 사회 환경이 오히려 극복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따라서 ‘장애를 극복하다’는 말은 장애인에 대한 시혜적 시선이 담겨있는 차별적인 표현입니다.
5. ‘장애에도 불구하고’
‘불구하다’는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표현 또한 장애가 일종의 결손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비롯합니다. 장애는 잘못되거나 불완전한 상태가 아니며, 동정의 대상은 더더욱 아닙니다.
6. ‘장애를 앓고 있다’
‘장애가 있다’가 옳은 표현입니다. ‘앓다’는 ‘병에 걸려 고통을 겪다’는 의미인데, 장애는 질병이 아니며 따라서 앓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장애가 치료되거나 나을 수 있다는 표현 또한 장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비롯합니다. 또한, 병리성을 부정적인 수사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 또한 문제적입니다.
혐오표현과 차별적인 표현을 지양하는 일은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외연을 확장하고 유연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를 만드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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